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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엽 교수 화랑무공훈장 67년만에 수훈
작성자 : 관리자1 등록일시 : 2019-09-1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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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베트남 연구가이신 전 연세대 교수/교육학 박사 이근엽(李根燁) 선생님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부상을 당하셨고, 철의 삼각지 전투에 참가하신 공로로 1952년 2월 이승만 대통령께서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셨으나 당시 전쟁중 행정 착오와 전세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제때 전달이 안되었고, 전후 주소변경등 혼란한 상황에서 주인을 못찾던 중, 최근에 우연히 연락이 되어 화랑무공훈장을 67년만에 수여받게 되었다고 알려 오셨습니다. 2019년 9월 18일 수도기계화사단 연병장에서 90세의 노학자이신 이근엽 선생님의 훈장 수여식이 67년만에 개최되는  희귀한 소식이 있습니다. 한-베트남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이근엽 원장님의 <화랑무공훈장> 수훈을 축하드립니다.


(연합뉴스)

67년만에 전달한 화랑무공훈장

입력 2019.09.18. 15:45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복무한 이근엽(89) 연세대 전 명예교수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고 18일 밝혔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이 교수는 1951년 북진 중이던 수도사단 1연대(현재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 자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휴전 이후 1954년 이등중사로 전역한 그는 이후 연세대학교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올해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국민캠페인을 통해 최종 공로자로 확인돼 군은 이날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훈장을 수여했다.

 

       

(가평=연합뉴스)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복무한 이근엽(89) 연세대 전 명예교수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고 18일 밝혔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이 교수는 1951년 북진 중이던 수도사단 1연대(현재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 자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휴전 이후 1954년 이등중사로 전역한 그는 이후 연세대학교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올해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국민캠페인을 통해 최종 공로자로 확인돼 군은 이날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훈장을 수여했다. 사진은 이근엽 교수가 훈장을 받는 모습.

 

andphotodo@yna.co.kr

 

 (국방일보)

66년 만에 찾아온 화랑무공훈장

김상윤 기사입력 2019. 09. 18   17:40 최종수정 2019. 09. 18   17:42

                                                                      
                                                                                                                        

수기사, 전 연세대 명예교수 이근엽 이등중사에 서훈식

 

전 연세대 명예교수이자 6·25전쟁의 호국영웅인 이근엽(왼쪽) 옹이 18일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유기종 사단장으로부터 긴박한 전장 상황 탓에 받지 못했던 화랑무공훈장을 66년 만에 전달받고 있다.       부대 제공

전 연세대 명예교수이자 6·25전쟁의 호국영웅인 이근엽(왼쪽) 옹이 18일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유기종 사단장으로부터 긴박한 전장 상황 탓에 받지 못했던 화랑무공훈장을 66년 만에 전달받고 있다. 부대 제공

전 연세대 명예교수이자 교육학 박사인 이근엽(89) 옹이 ‘6·25무공훈장찾아주기’ 국민 캠페인을 통해 66년 만에 자신의 화랑무공훈장을 전달받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수기사)은 18일 유기종 사단장 주관으로 6·25전쟁의 호국영웅 이근엽 이등중사에 대한 화랑무공훈장 서훈식을 개최했다.

사단은 부대를 찾은 이 옹을 장갑차로 모셔 행사장인 사열대로 안내했고, 전 간부가 참석한 가운데 군악대 연주 속에 훈장을 전수했다.

이 옹은 6·25전쟁 당시 수도사단(현 수기사) 1연대로 현지 입대한 뒤 강릉지구, 향로봉 지구, 수도고지, 금성지구 전투 등 수많은 전선에서 적과 싸워 공을 세워 1953년 6월 25일 화랑무공훈장 수여가 결정됐다.

그러나 이 옹은 긴박한 전장 상황 탓에 훈장 수여 결정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금성지구 전투 중 적 포탄에 의한 부상으로 치료받다가 1954년 3월 15일 전역했다.

전역 후 이 옹은 숭실대와 연세대 교수를 역임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15년 동안 코리아 타임즈 영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날 무공훈장을 받은 이 옹은 “이 영광은 당시 전사한 전우들 덕분이며, 이제라도 기억해줘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6·25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은 아직 훈장을 받지 못한 6·25 무공훈장의 주인공 5만6000여 명 중 91%가 85세 이상의 고령임을 고려해 국군의 날과 지상군 페스티벌, 춘천지구 전승행사 등을 계기로 국민 참여 캠페인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김상윤 기자 ksy0609@dema.mil.kr

 

 

 

 

 

 

김상윤 기자 < ksy0609@dema.mil.kr > 

 

               

(아래는 이근엽 교수님의 컬럼 인용)

 

“ 베트남전당시 파리협상의 주역 “수수께끼의 빈 여인” 서울에 오다.“
작성자이근엽교수 (2004.07.08 18:50:00)조회수 1375
“ 베트남전당시 파리협상의 주역 “수수께끼의 빙 여인” 서울에 오다.“

이근엽*

베트남의 5월에는 두 가지 의미 있는 날이 있다. 5월 7일은 디엔비엔푸 승전 50주년이요, 5월 19일은 국부 호찌민 주석 탄생 114 주년이 된다. 베트남전의 포성이 멈춘 지 34년. 한국과 베트남은 20세기 후반에 있었던 짧은 기간의 불행했던 관계를 청산하고 공통의 국익과 미래지향적인 동반자관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국교를 정상화한지가 13년째 접어들었고 이 기간 동안에 두 나라 사이에서는 경제, 사회, 학술, 문화, 관광 등의 여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협력관계가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긍정적 관계는 두 나라의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매우 의미가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68년의 남부 민족해방전선(소위 베트콩)에 의한 구정공세 이후에 미국은 티우정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트콩의 임시혁명정부와 파리에서 전쟁종결을 위한 협상을 벌였다. 이때에 미국을 대표해서 키신저 국무장관이 참석했고 임시혁명정부(Provisional Revolutionary Government, 즉 PRG)를 대표해서는 잘 알려져 있는 레특토(Le Duc Tho)와 빈(Binh)여인으로만 알려진 수수께끼의 여인이 참석했고 그녀는 뛰어난 활동으로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았었다.

그러는 동안에 미국의 닉슨 정권은 베트남전의 베트남화(Vietnamization)정책을 채택하게 되었다. 특히 1972년에 보응우옌잡 국방장관의 작전계획과 레꽝다오 현지사령관의 지휘하에 수행되었던 꽝찌전투에서의 구 베트남군의 참패는 베트남전의 향배를 거의 결정지었다.(TIME-지,1972 .5 .15, 카버스토리). 이후 1973년 1월 파리협정이 체결되고 미국은 사상 첫 패배라는 치욕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그 ‘빈 여인’ 즉, 응우옌티빈(Nguyen Thi Binh, 77세) 임시혁명정부 외무부장관이요 후에 통일정부의 부주석을 지낸 그녀가 서울을 방문한다. 참으로 어렵게 성사된 비공식 한국방문이다. 그녀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10대후반에 사이곤시 민족구국의 여성위원회 실행위원을 지냈으며, 사이곤시 여성연맹 회장을 지내다가 1951~53년에는 악명 높은 찌호아(Chi Hoa)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1962~68년에는 남부베트남 민족해방진선의 외무담당책임자요, 1968-76년에 남부베트남의 임시혁명정부 외무부장관으로서 PRG를 대표하여 파리협상에 참가했다.

통일 후에는 교육부장관, 국회 외교분과위원장을 거쳐 1992~2002년 10년간 국가 부주석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고엽제희생자, 지체장애자, 평화증진 등을 위한 단체들의 총재직으로 베트남의 아동,청소년,복지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 방한은 베트남의 어린이 보호기금 총재직으로 (주) 우성아이비(대표이사 이희재)의 초청에 의한 비공식 방문이다. 부주석 취임후 10년동안 한국방문을 거절했던 빈여사의 이번 방한에는 동 후원회의 부총재인 짱티탕탕 전장관, 동후원회의 사무총장 부안다오여사, 사무차장 레티낌즈엉여사와, 비나우성합작회사의 응우옌후이투에 박사 등도 동행한다. 5월 20일부터 25일사이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문화관광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담, 청소년수련원시찰, 독립기념관방문등 의 일정이 잡혀져 있다.

위에서 적은 바와 같이 그의 국가적 비중으로 보아서 그의 한국방문은 베트남정부의 어려운 결단과 배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일의 성사는 정부차원의 외교경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베트남에서 그동안 민간외교 사절 역할을 해온 (주) 우성 I. B. 의 이희재 사장의 각별한 베트남사랑 정신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적어둔다. 민간외교의 좋은 본보기로 치하드린다.

*이근엽 박사, 한-베트남 사회인문과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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